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아빌라의 데레사의 영적여정과 영혼의 城 - 김홍일 신부
  • 아빌라의 데레사의 영적여정과 영혼의 城





                                                          김홍일(사제, 성공회 선교훈련원)



    1. 아빌라의 데레사의 생애와  배경



    기도의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아빌라, 혹은 그곳에서 가까운 고타렌두라이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고,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개혁의 움직임과 분열이 발전하고 있었다. 데레사가 태어나기 20년 전 경 아라곤의 Ferdinand에 의해서 이슬람은 스페인에서 축출되었고, 독일에서는 마틴 루터가 위텐버르그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못 밖아 붙이며 종교개혁의 불을 당기고 있었다.



    16세기 스페인에서 유다인은 모멸스럽게 여겨졌으며 아빌라의 사람들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였다. 유대계였던 그녀의 아버지 알폰소는 가톨릭에 의해 개종을 강요당하였고 아빌라로 이사 오기 전 데레사의 가족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 상태였다.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가 톨레토 교회 주변 속죄의 행렬에 끼어 매를 맞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녀의 아버지 알폰소는 온화하고 겸허하며 또한 명상적인 기질이 있었고, 점잖고 품행이 단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완이 없었던지 죽기 전에는 많은 빛을 져 가세를 기울게 하였다. 그는 자기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게끔 여종과 하인들 거느리고 비슷한 계층의 귀족들과 함께 왕에게 충성을 다했고 명예를 중시하였다. 데레사의 어머니 베아트리스는 온화하고 진중하였으며 신심이 매우 깊었다. 아이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신앙심을 심어준 것도 어머니였다.



    데레사는 그 당시 귀족 자녀들이 받는 교육을 받아 아주 어릴 적부터 읽기를 배웠다. 데레사는 형제들과 함께 성인전 읽는 것을 좋아하였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설래게하였다.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비교적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열정적인 성격의 소녀로 성장하였다. 아빌라가 성장한 고향의 지리적인 환경도 데레사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풀 한포기 나지 읺는 메마른 가스틸르 고원에 자리잡은 아빌라는 여든 개나 되는 성탑이 요새처럼 우뚝 솟아있다. 훗날 그녀가 수녀들을 위하여 쓴 것 중에 “죽어도 좋으니 져서는 안 됩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빌라 도시의 표어인 “꺽일려면 부서져라”고 한 말을 연상시킨다.  



    데레사는 그녀의 나이 14세에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엄마 대신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 그녀는 스스로 “나는 여간 멋을 부리는 처녀가 아니었습니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 시절 데레사는 그녀의 친척들 가운데 좀 자유분방한 사촌 여형제와 친하게 지내면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였다. 딸의 이같은 상황을 우려한 아버지 알폰소는 그녀를 아빌라에 있는 아우구스티노 수녀회에 맡긴다. 이 수녀원에 머무는 일 년 동안 데레사는 하느님이 자기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을 행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당시를 회고하며 데레사는 “그래도 나는 수도생활의 소명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고 말하였다.



    1532년 수녀원에 있던 데레사는 중병에 걸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투병생활은 데레사가 어릴 적 배운 진리를 재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수도생활에 대하여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던 데레사는 오빠 로드리고가 인도로 떠난 후 1535년 11월 2일 그녀의 나이 21세에 북쪽 성벽 바깥쪽에 위치한 강생 갈르멜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데레사가 들어간 이 수녀원은 1478년 경건한 부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어 1510년 갈르멜 회규를 채택하여 가르멜 수녀회가 되었다. 당시 수도회의 완화된 규칙들로 인하여 봉쇄는 지켜지지 않았고, 각자는 자기 재산으로 수도원 안에서 살고 있었다. 당연히 부유층의 수녀들과 가난한 수녀들 사이에 생활에서의 차별이 온존하였고, 필요에 따라 가족이나 친구들 집에 오랫동안 머물기 위해 외출을 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그러나 데레사는 수도생활로 들어서자마자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을 이겨낼 줄 아는 이에게 하느님이 얼마나 잘 보답해 주시는가”를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그녀는 “어디서 그것이 생겨났는지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안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이 샘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서원한지 2년 뒤 그녀의 예민한 체질은 “환경과 음식의 변화”와 고행으로 심한 중병이 걸리고 말았다. 치료 중에 데레사는 숙부 베드로로부터 ‘에스파니아식 초보의 제삼부’라는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그 책의 저자는 프란시스회의 오수나수사로써 영적인 표현을 알파벳 순으로 말해나가면서 묵상기도라 불리우는 개인적 기도방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그 책에서 당시 ‘레고지도스’라는 심신단체와 영성가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던 잠심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방법이란 생각과 논리의 연결보다는 오히려 영혼의 정서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하느님을 향해 가는 단순한 방법에 대한 서술이었다.



    데레사는 그녀가 배운 기도방법으로 만족스러운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방법은 “자기 죄에 대해서 묵상하고, 주님의 고통의 신비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자신의 기도생활에 대해서 “하느님은 내게 이해력과 깊이 생각하는 재능도, 그리고 상상력을 이용하는 재간도 주시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런 점에서 오수나의 책은 그녀의 기도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책의 안내에 따라 기도하였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녀의 마음 속 깊이 당신의 현존을 느끼게 하시어, 하느님을 위한 사랑에 그녀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도록 이끌어 주셨다. 그녀는 점차 묵상기도를 통하여 내면의 왕국으로 통하는 입구를 찾아내어 풍요로움과 무한함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인생에서 묵상기도보다 뛰어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듯이 그녀의 영성생활은 거기에서 시작되어 거기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생활과는 달리 육체적 질병의 고통은 더욱 깊어지고, 언제나 명랑하였던 데레사는 깊디깊은 슬픔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의사들은 그녀의 병명을 불치의 폐결핵으로 진단하였다. 1539년 8월 15일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져 내리 사흘 동안 마치 죽은 사람과도 같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후 데레사는 의식을 되찾았고 병중에도 자신을 수녀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간청하였다. 거의 삼년 가량 그녀의 몸은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기어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느님께 드렸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녀는 미소를 되찾았고 평생 마비상태가 계속되는 것까지도 평온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행하고 있던 묵상기도에서 자기를 다스리는 힘과 크나큰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병과 기도와 깊은 참회는 그녀를 변화시켰다. “인생이란 죽음이라든가, 또한 살아있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두려움 없이 견디어 가는 것입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그녀는 주님을 찾는 데 인간의 어떤 상태도 참된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데레사는 1542년 봄에 회복되었다. 그러나 완쾌된 것은 아니었고 그후 죽는 날까지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받았다.



    병실에서의 생활과 오핸 시간의 묵상기도에서 받은 은혜는 아직 희미하게나마 그녀의 내면에 영적인 균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데레사는 그녀의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세속적인 교제와 하느님을 향한 몰두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고, 1543년-1544년 1년의 기간은 묵상기도를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 아버지의 고해신부였던 바론 신부의 깊은 신앙과 학식에 감화되어 1544년부터 다시 묵상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마음 속 깊이 더욱 완전한 생활로의 부르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필요함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1555년 이전까지의 기간은 그녀에게 내면적 싸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많은 책을 읽었고 특별히 루돌프의 ‘그리스도의 생애’ 토마스 아캠퍼스의 ‘준주성범’ 알폰소의 ‘하느님을 섬기는 기술’ 루이스의 ‘죄인들의 인도 및 묵상기도와 묵상의 교본’ 같은 책들은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영적무기력에서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이었다. 그녀는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내 이야기가 씌여진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 그녀의 회심을 마무리짓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기도소 성상 앞에서 상처투성이인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으로 데레사는 자신의 비참함을 깊이 자각하였고, 이 자각을 내적생활의 진보를 위한 기초로 삼았다. 그녀의 이 자각은 병적인 자기분석이나 자기관찰에 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향한 시선에서 얻은 것이었다. (심리적 자기인식과 영적인식-하느님과의 관계, 초자연적 자산들, 죄의 성향)



    그녀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원하고,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자기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적 변화는 한순간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묵상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 마음을 쓰지 않기로 생각하고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은 16년 전 그녀가 묵상기도를 시작하였을 때 맛보았던 하느님 체험을 아주 짧은 시간에 또 다시 맛보게 해주었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적절하게 여겨졌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기도 중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고, 예수님의 내적 비젼을 보았다. 기도 중에 그녀의 체험은 화려해보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 사람들과 자신의 기도를 성찰할 때면 그것은 마치의 악마의 일처럼 위협이 되곤 하였다. 그녀의 초기 영적지도자는 그녀에게 두려움을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녀를 다른 상담자에게서 넘기고, 또 다른 상담자에게 넘기는 일을 뒤풀이 하였다. 그녀는 조용하고, 고독한 기도를 그만두도록 강요받았다. 복종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결코 혼자 있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나 “대화중에 하느님께서 나를 침잠하도록 만드시고 내가 그것을 피할 수 없이 하느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내게 말씀하셨다.” 심지어 어떤 영적지도자는 그녀가 기도 중에 체험하는 그리스도의 비젼은 무가치한 무화과나무라고 여기도록 하였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묵상과 관련하여 정적주의자들에 대한 심문과 다른 한편으로는 루터파들의 영향에 대하여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시기라 데레사의 기도체험도 같은 맥락에서 취급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체험을 잘 이해할 수 없을 때 데레사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하였다. 그 책은 하느님과 영혼과의 일치에 대해 서술되어 있었고 그녀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 시기에 그녀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다 묘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프란시스 회원이자 의사인 라레도의 베르나르디노가 쓴 책으로 신비적 길의 단계를 묘사한 “시온의 등반”인데 1538년에 개정. 재판되었다. 당시 데레사에게 도움이 되었던 고백신부 세티나 디에고는 아직 젊었지만 즉시 그녀를 이해하였고, 그녀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영임을 보증하면서 데레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무엇이 20년간 그녀 자신에 대한 의문과 조언자들과의 싸움에서 겪었던 그녀 자신의 어려움을 넘어서도록 도왔을까? 그녀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만 복종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기도를 스스로 조종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그저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맡기었다. 그녀는 그녀를 순종하게 하는 하느님의 엷은 은총을 확인하였고, 이는 그녀를 강하게 하였다.



    그녀는 또한 은총의 수레가 되는 세 가지 체험을 이야기 하였다. 두 가지는 그녀가 기도 중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마지막은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하느님으로부터 들은 강력한 한 가지 말씀은 그녀가 친구들에 의해 버려졌을 때 들은 말씀인데, 그녀는 그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나를 대적하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나를 우습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고해신부에게 나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녀가 외로운 가운데 기도하고 있을 때, 그녀는 “두려워 말라, 내 딸아.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음성을 듣는다. 그녀는 그 후 “나는 불굴의 고요함과 용기, 안전한 빛을 보았고 한 순간 나는 내의 영혼의 변화를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때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천사와 대화하기를 원한다.” 그녀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나는 더 이상 하느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일에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에너지를 쏟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날 이후 그녀는 “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때 데레사의 나이는 마흔 한 살이었다.



    데레사는 1560년 그녀가 신비적인 여정 중에 있을 때에,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심장의 상처라고 불리우는 은혜를 받았다. 즉 천사의 화살이 자기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체험이 몇차례 거듭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후 그녀가 그녀의 기념비적인 일을 시작하기 직전 알칸타라의 베드로를 만났다. 그는 그가 속한 프란시스 수도회의 개혁을 주도하였고, 데레사에게 깔멜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 일하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그의 금욕적 수덕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데레사는 그에게 자신을 나누었고 그는 데레사를 이해하였다. 데레사는 이 사건에 대하여 “그는 처음으로 나의 체험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데레사의 체험에 대하여 확신을 주었고 자신의 체험을 나누었으며, 프란시스 수도회 안에서 하고 있는 자신의 개혁작업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후 베드로는 데레사의 영적지도자가 되었고 데레사는 이 경험을 기초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이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않고, 안전하게 느끼도록 이를 위한 동기와 이유를 주었다.”



    오직 하느님께만 복종하는 것, 하느님께서 결코 그녀를 버려두시지 않는 다는 믿음,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영적친구... 이 세 가지 은총의 수레들이 데레사로 하여금 그녀에게 닥치는 모든 시련을 이기고 하느님을 향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데레사는 쉰 두 살에 그녀의 생애 마지막 시기인 가장 알찬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15년 동안 그녀는 손수 수도원 열다섯 개를 창립하기 위해 가스틸르와 안달루씨아 구석구석을 숨이 꽉꽉 막히는 더위와 눈보라치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칠 줄 모르며 여행을 하였다. 그녀는 수련자들의 양성을 위해 그 와중에도 “완덕의 길”을 집필하여 수련자들의 기도생활을 도왔다. 그러나 이같은 데레사의 개혁작업을 의혹과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던 안달루스 갈르멜 수사들의 중상과 모략으로 데레사는 1575년 활동중지와 한 수도원에 은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1572년 5월 13일 이후 강생 수도원의 고백신부였던 십자가의 요한도 그들에 의해 톨레토에 감금되어 있었던 때이다. 강제로 활동을 중지당한 톨레토에서 그녀는 “영혼의 성”을 3/4 정도 완성시키고 또 다시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악마가 나를 두려워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1582년 한겨울 그녀 나이 예순일곱에 부르고스 수도원 창립을 위해 또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갈바리의 마지막 길이었다. 그곳에서 마지막 사명을 마치고 아빌라의 사랑하는 작은 성 요셉 수도원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치려고 다시 출발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그녀는 알바로 가라는 안토니오신부의 명령을 받고 그곳으로 가서 바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녀는 10월 3일 고백성사를 마치고 영성체와 병자성사를 받는 자리에서 “나의 주님, 나의 거룩하신 정배여 그렇듯 바라던 때가 이제야 왔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분, 나의 주님, 우리가 만날 때입니다. 자 갑시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고 말했다. 다음 날 밤 그녀는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통회의 시편 50을 읽고 있었다. 10월 4일 하루 종일 묵상기도 중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9시에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돌려드렸다.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에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님 하나시면 흐믓할 따름이니라.”

                    -데레사의 ‘성무일도서’ 책갈피에 들어있던 쪽지에서 -  



    2. 아빌라의 데레사와 일곱 궁방



    아빌아의 데레사의 가르침은 실천적인 신비 영역에 속해 있다. 그녀는 초보자들의 첫 걸음부터 신비적 일치의 절정까지 길의 단계들을 묘사했으며, 영혼들의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위한 완벽한 안내자가 되었다.



          “나는 내가 확실히 체험한 것 밖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본질적인 것에 비해 감각적 수준의 여러 현상과 같은 우연성에 너무 치중하였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재로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는 엄밀한 의미로서 성덕과 이런 이상한 현상들을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녀에게 자기의 독특한 체험을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할지라도 각 영혼들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또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에 있어서도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관상기도의 스승이었던 데레사는 어떤 틀에 밖힌 일정한 기도방법을 제공해 주지는 않았다. 데레사의 묵상기도의 근본적인 원칙은 잠심함으로써 자기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을 찾는데 있다. 그녀는 “묵상기도에는 보고 듣는 것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도록 습관들여야 하며 고독 속에 머물도록 해야만 합니다.” 라고 하였다.



    “영혼의 성”은 데레사가 그녀의 영적지도 사제였고,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그라시안신부의 요청으로 1577년에 썼다. 이 신비신학의 걸작은 묵상기도와 영적여정에 관한 성녀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데레사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여정에 관하여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일곱 개 궁방을 자신의 기도체험에 근거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하느님이 계시고, 빛나는 화덕이 있는 중앙으로 가까이 감에 따라 더욱 더 밝아지는 지역들이 나타내는 수정 공을 보았다. 원 바깥에서 영혼은 하느님과 완전히 합일하고, 그 분의 빛 안에, 그 분의 동의 아래 살기위해 자신의 중심으로 가야한다.



    첫째 방은 가장 바깥에 위치한 방이다. 이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기도와 생각’이다. 그 방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기도가 시작되는 방이다. 이 방에서 기도자는 기도 중에 자기인식의 탐험을 시작하는데 이 방에서 기도자는 자신의 비천함과 마주하게 된다. 세속(재산, 명예, 사소한 일들)에 빠져있는 자신과의 직면은 그것으로부터 떠나고픈 갈망을 동시에 일으키는데 이는 둘째 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다. 여기서 기도자는 자신의 비천함보다는 하느님의 힘을 우러러 봄으로 덕에 가까이 나갈 수 있으며 겸손은 자기지식이 성장하는 열매이다. 이 단계에서는 묵상기도와 구송기도가 함께 드려진다. 구송기도에서 중요한 점은 누가 기도하는가(전인적), 하느님 안(앞)에서 기도하는가(현존의식),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내용에 대한 주의)로 데레사는 주의기도를 천천히 읽는 것으로 소리기도를 실습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둘째 방은 벌써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의 방이며, 첫째 방에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방이다. 이 방에서 기도자는 기도 중에 거룩한 실재에 대한 감각(부르심을 들음)을 체험하기 시작되는 방이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리워한다. 이 방에서의 들음은 강의나 설교, 독서를 통하여, 또는 삶의 고통과 기도할 때 깨우쳐 주시는 진리 온다. 기도자는 기도 중에 위안을 체험하며, 구송기도에서 묵상기도로 변화가 시작된다.  데레사는 자신의 기도체험을 이야기 할 때 자주 이미지(정원, 궁방 등)를 사용하였으며, 묵상기도 중에 상상을 하는 주체가 자신인지 하느님인지 의심하지 말고 내어맡길 것을 권고하였다. 여기서 기도자는 하느님께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하며 기도가 기도자의 삶에서 보다 진지한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녀는 기도 중에 경험하는 이미지를 분별하는데 있어, 성경의 말씀과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힘이 있고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지,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을 주는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기억하기 쉬운지, 진실 되게 느껴지는지, 생각하지 못하였던 놀라움과 통찰이나 발견이 있는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깊은 만남이 있는지, 쓰여진 글 너머의 깊은 진실과의 만남이 있는지, 겸손하게 하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고, 하느님을 섬기고 싶은 갈망으로 이끄는지를 살펴 분별할 것을 권고하였다. 기도자는 이 방에서 얻는 은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만 때로 기도자는 메마름으로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 때 제일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이때 이성은 우리의 기억과 의지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 방에서 기도자는 기도 중에 더 많은 위안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은둔생활이나 고행생활 같은 자신의 수행이나 그로부터 얻는 위로에 자족하지 않는 겸손과 경외심이다. 기도자는 스스로를 쓸데없는 종으로 고백하여야 한다. 기도자는 아직 집착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지만 조금씩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르침이나 규율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하느님은 자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우시기 원하지만 먼저 우리가 그것을 받을 준비를 하여야 한다. 기도자에게 가장 필요 것은 힘을 다하여 하느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첫째 방과 멀지 않아 언제든 자시 돌아 갈 위험이 있는 연약한 단계이지만 이 단계는 다음 성장을 위한 spring‐board 이다. 이 단계는 영적인 성장과 진보를 위해 영적지도를 필요로 하는 단계이다.



    넷째 방은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데레사는 그것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      다. 이 단계는 기도생활의 진보를 만드는 단계이지만 그것은 ‘많은 지적 과정’이 아니라     ‘많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기도자는 자기 내부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강력함을 의식하기는 하지만 무엇을 하시는지를 볼 수는 없다. 데레사는 이 방에서 누리는 위안을 기쁨과 재미로 표현하고 있는데 사랑의 열매로 그것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방에서 데레사는 “묵상이 많이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데 있으며, 사랑은 맛이 더한데 있지 않고 오직 더한 결심에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기도의 주도성은 기도자에게서 하느님께로 넘어간다. 이 방은 기도자를 신비의 초입으로 안내한다. 데레사가 말하는 정원의 비유에 의하면 물고랑을 내는 단계에 해당된다. 기도자는 기도 중에 수동적 침잠에 젖어들고, 주부적 관상체험을 하기 시작한다. 기도에서 지적(사고) 기능이 약화되고 위안의 경험은 작아진다. 이 때 경험하는 감각의 어둔 밤은 하느님과 관련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분적 앎이 붕괴되기 때문에 오는 것인데, 하느님과 관련하여 이전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미지, 지식, 감정은 더 크신 하느님과의 만남 앞에서 붕괴 된다. 우울증과 어둔 밤을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은 메마름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더울 강하게 타오르고 그 불길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진보를 위하여 요청되는 것들은 첫째, 하느님을 어떤 이익을 넘어 사랑하는 것, 둘째 우리의 섬김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려는 것을 포기하는 겸손, 셋째 맛이 아니라 주님을 본받고 주님과 함께 괴로움을 겪으려는 의지, 넷째 은혜를 주시는 하느님의 자유로우심에 대한 순종이다. 여기서는 물이 부어지는 대로 물이 빠져나가는 뜰채를 물에 던지듯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다섯째 방부터는 단순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단계이다. 데레사는 같은 궁방이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까닭에 이 방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단계는 기도자의 지성/기억/의지가 고요해 진다. 이 방은 넷째 방과 달리 상상이나 분심이 들어올 수 없는 방이며 데레사는 처음으로 하느님과의 합일이라는 말을 이 방에서 사용한다. 그녀는 나비가 되기 위한 누에의 죽음으로 이 방을 묘사한다. 이 방에서 체험하는 하느님의 은혜를 분별하는 징표는 의심없이 하느님께서 기도자 안에, 기도자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고, 은혜 없이 몇 년이 지나도 한 번 체험한 은혜를 잊을 수도 의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청혼(맞선)의 시간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영혼은 자기가 맞아들일 신랑을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다. 매우 영적인 이 단계에서 기도자는 여전히 길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고, 자기집착과 사랑은 언제든지 기도를 그릇되게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자기 안에서 보게 되는데 만일 그 같은 성장을 하지 못하면 심각하게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다.



    여섯 째 방은 약혼의 시간이라고 하며 데레사는 이 방에 대한 설명을 가장 길게 하고 있다.  맞선을 통하여 자신을 살짝 보여준 신랑은 약혼을 서두르는 영혼의 열렬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최대의 행복을 얻기 위하여 약간의 희생을 요구하신다. 데레사는 여기서 받는 고통을 자신이 경험한 모함과 비방을 예로 들고 있다. 이같은 고통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들을 첫째, 좋다, 나쁘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관심 밖에 두는 것, 둘째 자신에게 있는 좋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찬미하는 것, 셋째 자신의 덕행이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에서 온다는 믿음, 넷째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존영만을 구하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녀는 합일의 은혜를 받은 이후에도 자신이 40년 동안 이런 저런 고통 속에 있었음을 고백하며 이러한 역경 속에서는 오직 하느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데레사는 여섯 째 방에서 하느님이 영혼을 깨우쳐 주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면서 첫째는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사무치게 다가오는 깨달음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감미로운 상처를 말한다. 여기서 영혼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지만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여주려 하시지 않음을 알고 있다. 묵상기도가 더 이상 되지 않는 까닭은 이미 정신능력이 모두 무능력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 경우 무엇보다 해로운 것은 고독이다. 그녀는 이 같은 고통을 없애는 방법을 모른다고 고백하며, 다만 견딜 수 있는 방법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라고 충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데레사는 이 단계에 있는 기도자에게는 격려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단계는 깊은 무지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단계에서 기도자는 하느님과 온전하게 일치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원치 않는다. 나아가 기도자는 자신이 하느님의 광대한 사랑 앞에 얼마나 부족하게 응답하며 살아 왔는지를 깨닫는다. 기도자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지만 그를 바라볼 수 없는데 그것은 달콤한 고통이다.



    데레사는 하느님께서 영혼을 깨우쳐주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보았다 혹은 들었다 하는 체험들을 언급하면서 그 체험 자체를 대단히 여기는 것도, 혹은 악마의 장난이라 치부하는 것도 경계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분별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이 기쁨을 주건, 잘못을 깨우쳐 주는 것이건 기도자 자신과의 관계에 한정된 것이라면 대수롭게 여기지 말되 그 체험으로 자신이 더 나아졌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더욱이 들은 말씀이 제 삼자와 관계된 것이라면 영적지도자나 공동체의 분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마음속으로부터 들려오던, 위에나 밖에서 들려오든 하느님의 말씀이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분별하는 징표는 첫째, 그 말씀의 위력과 권위로서 그것은 말함과 동시에 역사함이다, ‘슬퍼하지 말라’는 한 마디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든 것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평화와 광명이 가득 차게 된다. 둘째 징표는 영혼 안에 남아있는 깊은 고요, 경건스럽고도 평온하고 차분한 마음, 하느님을 찬미하려고 준비되어 있는 마음이다. 셋째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 들은 말씀이 상상력의 소산이라면 이상에서 언급한 표징은 하나도 없고, 마음 속 평화와 기쁨도 없다.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또 다른 방법은 자각적인 보임이다. 그것은 상상이 아니라 지성의 보임이다. 이 경우 영혼은 하느님 말씀은 마치 자기 귀를 듣듯이 똑똑하게 그리고 신비롭게 느낀다. 그것이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면 첫째는 말씀이 명료하다. 둘째로 들리는 말씀이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들린다, 셋째는 상상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씀을 한 마디씩 엮어 나가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기도자가 철저하게 듣는 자리에 있다. 넷째로 하느님의 말씀은 단 한마디라도 인간의 재간으로는 그토록 빨리 지어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이 말씀하실 때는 소리나는 말보다 소리없는 말로 더 많은 것을 깨우쳐 주신다.



    데레사는 여섯 째 방에서 탈혼에 대하여 언급하며 이 단계에서 주어지는 은총을 첫째, 하느님의 위대함에 대한 인식과 깊어지는 깨달음, 둘째 자아인식과 겸손, 셋째 세상 일체를 가볍게 여겨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관계없는 일들을 무용하게 여기게 된다.



    일곱 째 방, 데레사는 무지의 여섯 째 궁방과 이 방 사이에는 닫혀 있지 않은 문이 있다고 한다. 이 방은 영적결혼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하느님과의 일치로 인한 기쁨이 넘치며 십자가 성 요한의 시 ‘사랑의 불꽃’에 나오는 마지막 연과 비슷한 체험의 단계이다.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결혼의 신비로운 은혜를 주시려고 할 때는 먼저 영혼을 그 방에 들게 하시는데 여섯째 방처럼 탈혼에 들게 하시지는 않는다. 바울로 사도처럼 영혼을 장님과 벙어리로 만드시어 그 누리는 은혜가 무엇이며 어떠한가를 통 느끼지 못하게 하신다. 이 방에서 영혼은 삼위일체에 참여하고 기도자는 변화되고 세상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는 하늘에서 강이나 우물로 떨어지는 물이 똑같은 물이 되어 버려서 강물과 떨어진 물을 나눌 수도, 따로 갈라놓을 수도 없듯이 하느님과 영혼을 가를 수 없다. 바울로 사도의 고백처럼 주님과 결합하는 사람은 그분과 한 영이 된다.(고전 6:17) 이 방의 체험이 주는 열매들이 있는데 첫째는 나에 대한 잊음이다. 둘째는 하느님을 위해 괴로움을 많이 받겠다는 욕망이다. 이 방이 색다름은 다른 방들에 있던 마음의 메마름이나 시끄러움이 거의 없고 거의 항상 고요 잔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이같은 체험을 지속시키지 않고 거두시는 이유는 겸손과 하느님께 의지하는 갈망을 꺼뜨리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일치의 은혜는 하느님과 이웃사랑으로 영혼을 더 깊이 초대하시기 위함이라 결혼은 언제나 실천을 낳는다. 이웃사랑이 일치를 분별하는 기준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믿으시오. 가장 확실한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하느님은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를 그 손 안에 맡깁시다.”



    3. 일곱 궁방과 영적성장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자선전을 쓰던 시절까지만 하여도 그녀 스스로 아직 영적결혼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점에서 그 이후 쓰여진 ‘영혼의 성’은 그녀가 기도 중에 받은 은혜와 경험이 충만해져 있을 때, 자신이 경험한 묵상기도의 등급을 더욱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데레사의 영적체험을 종합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같은 등급의 구분은 그 이후 영정성숙의 과정을 경직된 단계론적 과정으로 받아들  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요사이 일고 있는 영성운동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는 상업주의와 결합한 단계론적인 영적성장 논리이다. 영성수련 과정을 초급, 중급, 고급 과정으로 구분하고, 한 단계를 마치고 그 다음 단계의 수련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듯 포장하여 영성수련을 상품화하는 현상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유사종교운동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영성운동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리챠드 우드( Richard Woods)의 논문 “Stages of Spiritual Development”는 영적성장에 대한 이해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변형되고 단계론적으로 고착화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

      

    신약시대부터 중세초기까지 영적경험들에 대한 진술들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는 사도 바울이 어린아이와 성인,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할 신앙인과 단단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신앙인을 구분하여 이야기(히브 5:12)한데서 유래한다. 이때 어린아이를 지칭하는 단어 ‘네오피스’는 신약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같은 성숙모델을 당시 영지주의자나 이교철학자들은 영적성숙을 표현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초대교회에서 영적 삶에서 점진적 발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닛사의 그레고리는 뻗어나감(epectasis 필립 3:13)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모습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가는 모델을 정화, 조명, 일치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또한 프로코페 (progress, 발전)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완성을 향한 발전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으며, 이것은 하늘에 이르러서도 미완으로 계속 추구되어야 할 신비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후 단계 step, stage, 지위 order, rank 등의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영적성장의 과정을 좀 덜 유동적이고 고정된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혼의 평화와 같은 state(stage 보다 고정)라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적성숙이 한 방향으로(one-way), 점진적으로(gradual) 성장한다는 첫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어린 아기와 같은 단계에서 점차 힘과 통찰과 내적일치(integrity)를 이뤄감에 따라 어른과 같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모델이 생겨났다.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어떤 사람들을 더디게 성장하고, 어떤 경우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여겼으며, 주변 상황들이 도움이 되거나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참 인간, 즉 하느님의 비전에 도달하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각 단계들이 나타내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 영성 전통에서 정화와 조명과 일치는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중요한 행동 지침(important behavioral objectives)들에 대해 말하는데 초점이 있었다. 지난 세기부터 널리 퍼진 편견과는 다르게, 초대교회의 저자들은 기독교인의 영적 성숙의 과정을 정적으로가 아니라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영적 경험들(예를 들면 정화, 조명, 일치)에 대한 서술들이 발전하면서 점차 각 시기를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하였으며, 아빌라의 테레사에 이르러 건물의 방과 같이 더 체계적으로 분리 되었다. 관심이 역동성으로부터 떠나 이론적인 단계와 예측 가능한 구조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데레사에 대한 최근 연구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일곱 궁방을 단계론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인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함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데레사는 하느님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영적여정을 일곱 개의 궁방으로 표현하였지만 그 ‘궁방의 숫자는 늘일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영적여정을 설명하는데 완전한 수 7을 선택하였고, 그것은 지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이었다.



    “내가 다룬 바는 일곱 궁방뿐이었지만 그 궁방마다의 위 아래로 옆으로 많은 궁방이 있습니다.”                     - 영혼의 성, 제 7궁방. 4장 3항 -



    데레사에게 있어 영적여정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우리 영혼의 사랑이라는 두 힘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여정이 굳어진 어떤 순차적 단계를 의미하기보다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말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영혼은 우리가 알다시피 성장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만 영혼은 육체가 성장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서 어른 키만큼 되면 다시 줄어들어 또 다시 작은 몸집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십니다......주님은 우리의 보다 큰 선익을 위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시고, 귀양살이 하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려 하십니다. .... 이 영성의 길에서 제아무리 거인의 키만큼이나 크다 해도 가끔은 어린아이 상태로 되돌아가서 아기처럼 젖을 빨 필요가 없는 영혼은 없습니다....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일이라서 이 후에도 가끔 되풀이 할 것입니다.”

                                     - 자서전 13장 中에서 -



    ‘영혼의 성’ 네 째 궁방에서 그녀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궁방에 이르기까지 먼저 다른 궁방살이를 오래 해야만 되는 듯이 생각될지 모릅니다. 물론 이미 말한바와 같이 그러는 것이 보통입니다마는 일정한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거듭 거듭 들으신 것처럼 주님은 당신이 주고 싶으신 때에, 주고 싶으신 대로, 주고 싶으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고, 또 그 은혜는 당신의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3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 주님은 가끔 다른 이에게는 1년 후에 주시는 관상의 은혜를 20년이 지나도록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영혼들의 성화과정에서 하느님 자비의 직접적인 개입은 신학적 이론에 의해 세워진 영성적 성장의 논리적이고 규칙적인 과정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녀는 자서전 39장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아! 나의 하느님, 몇 번이나 우리가 영성적인 것들을 세상의 것들처럼 판단하기 원했으며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지식과 진리에 반대되는 소견에 의해 판단했는지요! 우리는 묵상기도의 실천을 몇 년이 흐른 후에 판단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측정을 하느님께 맡겨야하고 그분 마음에 들 때 그 분의 은혜를 계산 없이 주시고...”



    그녀는 기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도체험을 판단하는데 초탈하여야 하고, 자신의 논리를 찾는 것을 단념하고 하느님 자비의 작용에 자신을 맡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땅에 쓰려졌고 곧 이방인의 큰 사도인 바울로 변했다. 그런 점에서 기도의 성녀 데레사는 스스로 자신이 서술한 ‘영혼의 성’의 일곱 궁방은 영적성장을 감싸고 있는 신비의 기초 위에 놓여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단계들을 무시할 수 있으며, 정화들의 질서를 여기 혹은 저기에다 바꿀 수 있고, 거룩함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도 있고, 데레사가 언급하고 있는 상승의 아름다운 규범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영혼의 성                            예수의 데레사 지음       바우로 딸 출판사

    영성의 대가                          임마누엘 르놀 지음       분도출판사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         마리 에우젠 지음         가톨릭출판사

    Original Prayer                       Lavinia  Byrne            Orbis

    The Hell with the Devils              Gerald May

    Stages of Spiritual Development      Richard Woods



               물에 몸을 담그는 기도 -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



    나는 대화로서의 기도에 대한 고전적인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느님과 대화에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더 나은 은유는 기도를  물에 몸을 담그는  행동으로서 묘사하는 것입니다.

    고대 히브리 전통인 자기 정화의 한 방법으로 여러 차레 행해졌던,

    물 안에 완전히 몸을 담그는 침례 전통과 비교해서

    물에 몸을 담그는 행동으로 기도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물에 둘러싸이고, 접촉되어, 자비의 물속으로 완전히 잠기게 됩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김장환 엘리야 10646 2012-04-15
391 김장환 엘리야 2950 2012-04-15
390 김장환 엘리야 2444 2012-04-11
389 김장환 엘리야 1630 2012-04-03
388 김장환 엘리야 3522 2012-03-30
387 김장환 엘리야 1700 2012-03-28
386 김장환 엘리야 2241 2012-03-20
385 김장환 엘리야 2095 2012-03-12
384 김장환 엘리야 1984 2012-03-07
383 김장환 엘리야 1708 2012-02-09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