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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이 없어 창피해요 - 김규항 블로그에서 퍼옴
  • Patrick
    조회 수: 2082, 2006-12-01 09:23:23(2006-12-01)
  • 돈이 없어 창피해요
    저는 강남에 살아요. 우리 반엔 잘사는 집 친구가 많아요. 우리 반에서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한 것 같아요. 저랑 친한 친구들도 우리 집보다 훨씬 큰 아파트에 살고 용돈도 저보다 훨씬 많이 받아요. 친구들과 노래방 가거나 뭐 사먹을 때는 돈이 없어서 창피할 때가 많아요. 친구가 사주거나 대신 내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만날 얻어먹을 순 없잖아요. 아빠는 "자기가 가진 걸 나누는 게 진짜 친구"라며 친구가 사주는 걸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하세요. 그래도 저는 창피해요. 친구들이 만나서 놀자고 전화해도 거짓말로 피하는 경우도 있어요. 김준성(6학년, 남자)


      준성이 이야기 듣다보니 삼촌 어릴 적 생각이 나네. 삼촌집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거든.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게 6학년 때였어. 그걸 누가 사줘서 집에 가져왔는데 누런 물과 나무막대기만 들었더라. 더운 날씨에 그걸 들고 한참을 걸어왔으니 다 녹아버린 거지. 그런데 아이스크림은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어. 그걸 후루룩 후루룩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셨지.^ ^
      준성이네 집이 가난하다는 건 준성이가 가난한 게 아니라 부모님이 가난한 거겠지? 그래서 준성이 용돈이 동무들보다 적고 말이야. 그 동무들의 용돈도 다 그 동무들 부모님이 주시는 거지? 그러니 준성이가 창피할 건 없는데 말이야. 아빠 말씀대로 동무끼린 뭐든 서로 나누며 지내는 게 당연하고. 돈이든 다른 것이든.
      그런데 그 동무들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 준성이 부모님보다 더 부자가 되었을까? 정직하게 열심히 일한 결과겠지? 삼촌도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지도 몰라.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직하게 일하지 않고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참 많거든. 이를테면 5년 전에 5억원쯤 하던 강남의 아파트가 지금은 20억원이나 한다나봐. 그걸 가진 사람들은 가만 앉아서 15억원을 번거지. 15억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준성이 부모님이 5년 동안 함께 열심히 일해서 아끼고 아껴서 얼마나 저축할 수 있을까? 한 달에 100만원을 저축한다고 해봐. 물론 그게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쳐봐. 5년이면 얼마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거라면 부자가 자랑스러운 거 맞아. 게을러서 가난한 거라면 가난은 창피한 거 맞아. 하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도 가난하다면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화가 나는 일이지. 그건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바르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는 힘을 모아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르게 고쳐나가야 하겠지?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런데 지금 현재의 가난을 무작정 창피해한다면 아무 것도 고칠 수 없을 거야. 부자는 무조건 자랑스러운 거라면 아무 것도 고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준성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뭘 사먹고 하는 건 좀 시시한 놀이 아닌가? 하긴 요즘은 어른들도 돈을 쓰며 놀아야만 제대로 노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해. 삼촌이 보기엔 그런 놀이들은 다 시시한 놀인인데 말이야. 우리는 진짜 신나게 노는 방법을 잊고 지내는 것 같아.
    준성아. 엄마 아빠가 어떻게 사시는지 잘 살펴봐. 준성이가 가난한 걸 창피해한다면 그건 엄마 아빠를 창피해하는 거잖아. 엄마 아빠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사신다면 준성이는 엄마 아빠를 창피해할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할 거야.
      삼촌 말이 맞는 것 같아? 말은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마음이 개운치는 않지? 솔직히 말하면 삼촌도 때론 그렇단다. 산다는 건 생각처럼 간단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맞는 건 맞다고 믿고 또 그걸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는 건 멋진 일 맞지? 준성아, 함께 힘내자. 준성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수많은 동무들과, 그리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서도 가난한 수많은 엄마 아빠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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