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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례 여행 3 - 전례, 구원과 선교의 잔치
  • 주낙현 신부와 함께하는 전례여행 3

    전례, 구원과 선교의 잔치


    ‘전례’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 없는 형식’ ‘순서에 따라 지정된 어떤 행동’ ‘답답할 정도로 엄숙한 것’ ‘별 생각 없이 반복하는 습관.’ 이런 인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편,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것’ ‘장엄하고 신비를 느끼는 체험’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 ‘그리스도를 몸에 모시는 감격’이라는 생각도 엇갈린다. 이참에 전례(여기서는 ‘예배’와 같은 말이다)의 본뜻을 구원과 신앙 공동체와 관련하여 넓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1513년에 바티칸 시스틴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를 잘 알고 있다.


    640px-Creation-of-adam.PNG

    http://en.wikipedia.org/wiki/File:Creation-of-adam.PNG 


    이 그림에 빗대어, 전례학자 로버트 태프트 신부는 전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례란 하느님의 손끝과 인간의 손끝 사이에 놓인 틈새를 채우는 일이다. 이 그림에서 하느님은 창조자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손을 펼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손을 들어(혹은 손들기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이 다가오는 선물을 끊임없이 받으며 감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전례가 아니겠는가? 전례 사건 안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가 계속된다. 전례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구원의 관계이기에, 우리의 전례는 이 구원의 만남을 위한 특권이 되어 이 관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표현한다.”


    이 전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진 이 구원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전례의 공동체이다. 구원의 사건을 전례 안에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충분히 경험한 교회는 그 구원의 신비를 세상 속에서 실천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새로 얻은 생명을 살아간다. 이것이 전례 안에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작은 그리스도로 부름 받아 변화되는 신비의 본뜻이다.


    이 점이 바로 전례를 거행하는 교회가 바라보는 전망이며 목적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매주일, 또는 매일 참여하는 전례 안에서 이 구원의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겸손한 이들은 감당할 수 없이 큰 체험 안에서 그저 감사할 뿐 애써 풀이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의 극치는 말을 잃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경지이다.


    그 경지를 머물러 즐기면 좋으련만, 신앙인은 전례 공동체 안에서 나눈 구원의 체험을 이웃과 나누라는 파송 명령을 받는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선교 명령이다. ‘미사’라는 말은 원래 ‘이것으로 다 끝났으니 흩어지십시오’(ite missa est)라는 파송 선언에서 나왔다고 한다. 모인 공동체가 흩어지는 사명(missa-mission)인 선교는 우리 각자가 삶으로 펼쳐야 할 새로운 전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에 놓인 틈새를 채우는 새로운 선교의 잔치를 마련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는 전례 이후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삶으로 펼쳐야 할 또 다른 전례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선교라는 전례의 공동 집전자이다.


    선교라는 새로운 전례의 공동 집전자로서 우리가 밖에 있는 이웃들과 복음과 전례의 신앙 체험을 나누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나뭇가지와 같은 개인의 생생한 체험을 교회의 전통이라는 줄기에서 이해하고, 이를 설명하는 개념과 내용을 익혀서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정리해야 한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나 남에게서 빌려 온 이야기로는 이웃을 설득하기 어렵다. 우리 체험과 전통에 근거한 이야기와 내용을 마련해서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계속되어야 할 신앙 교육과 전례 교육의 방향이다. 이런 배움과 정리에 뒤따르는 이득은 신자 자신에게도 크다.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신앙 체험에 대한 감각도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여 무뎌진 듯한 감각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배움을 되풀이해야 한다.


    구원의 역사를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고 축하하며 이웃과 나누는 잔치인 전례. 이 전례를 신앙과 예배 생활, 그리고 선교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를 ‘전례 전통의 교회’ 혹은 ‘전례적 교회’라고 한다. 세계 성공회 안에는 여전히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적어도 한국 성공회는 이 전통을 중시했다. 


    다음 회에는 이 전통이 처한 도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위 글은 2011년 "성공회 신문"과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에도 게재되었으며, 필자인 주낙현 신부의 허락을 받아 이 홈페이지에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이 글을 다른 곳에 옮겨 실으시려면 주낙현 신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주낙현 신부 블로그 http://viamedia.or.kr

    성공회 신학 전례 포럼 http://liturgy.skhca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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