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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1
  •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1

    연재를 시작하며


    “그 누구도 섬처럼 떨어진 자가 아니며 그 전체요, 한 사람은 그 대륙의 한 부분일 뿐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나니.”


    17세기 영국을 살았던 성공회 사제요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명상록 한 조각이다. 이 아름다운 글이 시처럼 회자하여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1940년)이 되어 더 널리 알려졌다.


    그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이었다. 당시 천주교의 지원을 받은 군부 세력이 군사 쿠데타를 계획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스페인 국민은 물론, 헤밍웨이 자신을 비롯하여 자유와 정의를 지켜려던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군사 쿠테타 세력과 싸웠다. 소설가는 그 전쟁 경험을 기초로, 우리 삶이 이뤄야 할 사랑과 정의와 자유는 어느 혼자만의 일도, 혹은 나와 동떨어진 남의 일이 아니며, 모든 이들이 함께 돕고 연대하여 이뤄내야 할 것이라 그렸다. 어찌보면 그 소설은 존 던의 글에 대한 한 해석이었는지 모른다.


    존 던 신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알 수 없는 자신의 질병과 그 고통을 기도로 살피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되물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한 인간과 그 생명은 뿔뿔히 흩어진 한 개체가 아니며, 그 한 인간 자체로 온 창조 세계 그 자체이며, 하느님의 창조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인 것을 깨달았다. 사제인 그가 보기에, 이 모든 사람을 연결시키고 하나로 묶는 것은 교회 공동체였다. 그리고 그 교회 공동체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영성체에 초대하여 먹이고, 결혼시키고, 마침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전례와 성사를 그 행동으로 삼는 곳이었다.


    교회의 종소리는,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의 전례적 삶 안에서 하나가 된 우리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며, 그 하나인 우리를 위해서 서로 살아가야 한다고. 모든 이들에게 선사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자유를 우리 모두가 함께 축하하며 누려야 한다고. 그리고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작이었던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몇 세기의 여행을 거쳐 이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몇 가지 물음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 공동체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교회의 생활 양식인 전례와 성사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전례와 성사의 공동체는 나와 우리에게 “어느 누구도 섬처럼 떨어진 자가 아니며, 그 자체로 전체”인 것을 되새기며 경험하게 하는가? 아니, 이 물음 이전에, 우리는 교회와 전례와 성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 생각들은 나의 생각인가, 교회의 생각인가? 내 가족 전통의 생각인가, 한국 성공회의 생각인가? 그 한국 성공회의 생각은 여전히 하나인 몸을 이루고 있는 성공회의 큰 전통과 잇닿아 있는가, 아니면 동떨어져 있는가? 성공회 만의 생각은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한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과, 하느님의 모든 창조 세계와 잇닿아 있는가, 아니면 동떨어져 있는가?


    연재할 전례 이야기는 이런 물음에 고민스러운 대답 찾기의 여행이요 여정이다. 안타깝게도 그 여정 막바지에 이르러 그 대답이 분명해지리라 확신할 수가 없다. 아니 더 많은 물음들만 잔뜩 얻게 될는지 모른다. 다만, 그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신앙의 선배들을 불러 동행하려 한다. 여럿이 동행하는 그 길은 느릿할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회고가 마음을 언짢게도 할 것이고, 서로 마음이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갈 길은 먼데 금세 아파오는 다리에 포기하는 이들도 이도 있을 것이다. 손쉬운 ‘패키지 투어’가 아니라고 시작부터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접해 보지 못했던 생소하고 어려운 지도 용어와 논리에 머리를 쥐어 뜯을 지 모른다. 그래도 이 불편한 여정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이 상서롭지 않은 여정이 더 많은 생각거리와 추억거리를 남기지 않겠는가?


    그 여행의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려볼까?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종소리.”

    <<성공회 신문>> 2011년 2월 20일


    위 글은 2011년 "성공회 신문"과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에도 게재되었으며, 필자인 주낙현 신부의 허락을 받아 이 홈페이지에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이 글을 다른 곳에 옮겨 실으시려면 주낙현 신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주낙현 신부 블로그 http://viamedia.or.kr

    성공회 신학 전례 포럼 http://liturgy.skhca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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