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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목서신 - 2018년 3월 24일
  • 조회 수: 2318, 2019-03-24 21:36:57(2019-03-24)

  • 촉촉이 내리는 봄비(2)


    1. 이른 새벽인데도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어제 오늘은 지난 화요일(3월 12일)에 별세하신 故현길수 교우(안토니오/ 현순희, 현순종 교우 부친)의 장례 일정으로 여념이 없습니다. 현 안토니오 교우님은 90세의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 평생 성실하고 기품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별세하시기 대략 40여일 전에 세례를 받으시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성도의 별세는 늘 마음이 아프고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부디 하늘에서 안식하시고, 슬퍼하는 유족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가 가득하길 기도할 뿐입니다. 


    2. 연이틀 내리는 봄비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미세먼지로 연일 고통스럽던 나날을 말끔히 씻어내며,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농번기를 맞이하여 들판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는 농부들의 마음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울려 나는 듯 합니다. 

      실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물’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 물이 값없이 거저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를 적셔주니 이 또한 감동입니다. 겨우내 움츠리던 생명들이 봄비의 세례를 받아 한껏 물오른 자태를 이제 막 온 대지에 앞다투어 자랑하겠지요. 금년 봄에는 이런 대견한 생명들을 보듬고 바라보는 여유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생명의 비는 결국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먹거리를 생산하는데 물론 필요하지요, 대지의 나무와 숲 또한 비를 맞아 한 층 더 자라날 것이고, 요즘 우리나라와 주변국의 최대 이슈인 ‘미세먼지’를 잠재울 수 있는 것도 결국 ‘비’가 아닐까 합니다. 이처럼 비는 생명을 뿜어내고 존재를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른 비로 오소서 주여 오소서

     우리의 영혼 더러운 도시 자욱한 먼지 씻으사

     찬란한 봄빛을 다시 물들이는 

    성령의 단비

         이른 비로 오소서 이른 비로 오소서


     네. 성가 304장의 노래 2절입니다. 평소에 저는 이 성가를 즐겨 부르는데, 가사가 주는 메시지, 곡조가 만들어 주는 느낌이 매우 차분하고 간절하여 늘 부를 때 마다 뭔가가 올라옵니다. 작시인의 의도는 딱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더러운 도시와 비견되는 것 같아 크게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더러운 도시, 먼지와 오물이 넘치는 그 도시에 ‘봄비’가 내리길 갈망합니다. 비가 오는데 여전히 메마르고 탁하고 향방 없이 굴러다닌다면 이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겠다 싶습니다. 


    4. 사순절기는 그렇게 촉촉해지는 시기입니다. 이제껏 가리고 무시하고 덮어두었던 내 삶의 편린(片鱗)들을 ‘풍성하고 자비롭고 거역하기 어려운 비’ 의 강림에 맡겨 보는 시기입니다. 

      움트는 생명에게는 더없는 에너지가 될 것이고, 메마른 존재에게는 새로운 활력(活力)이 될 것이며, 향방을 잃고 방황하는 그분의 자녀들에게는 새롭게 반짝이는 의지와 목표를 보여줄 것이고, 어둠과 탐욕 그늘에서 신음하며 ‘더러운 도시’의 방랑자가 된 가련한 영혼들에게는 자신들의 비참한 모습을 드러낼 ‘은총의 단비’가 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는 치유의 단비로, 한참 자라나는 다음 세대, 특히 청소년들에겐 아픔과 상처, 고독과 불안, 경쟁과 초조함을 단번에 씻어버리는 단비가 되길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 바닥을 모를 성인세대의 탐욕과 일탈을 꾸짖고 회개하게 하는 세례의 성수가 되길 또한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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