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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inonia
  • 조회 수: 1801, 2019-03-17 19:06:15(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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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용(보나벤투라) 본교회 전도사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괴롭혔던 화두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의로움을 얻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문제는 관상(Contemplatio)”의 문제인 그리스도와 하나 됨이었습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수사 시절 수도원의 바쁜 일과 속에서도 늘 시간이 있을 때마다 수도원성당의 구석진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이 문제와 씨름을 하곤 했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Universität Wien)로 유학을 가서 학문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됨'이라는 중세 신비신학을 탐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리스도와 하나 됨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 문제에 대한 탐색을 포기하려고 할 즈음에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 삶이 뒤틀린 사람들을 연거푸 만나면서, 악과 폭력과 고통의 문제가 '그리스도와 하나 됨'이라는 관상의 문제만큼이나 위대한 문제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와 하나 됨이라는 것 자체가 악과 고통의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을 무한히 먼 거리로 보내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십자가의 하느님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습니다. 그 무한한 거리가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까요? 그 무한한 거리는 물리적으로 가닿을 수 없는 거리입니다. 그 무한한 거리는 마음속으로 아릿하게 깊숙이 진동하는 음으로서만 맞닿아지는 폭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무한히 먼 거리로 보내며, 자신을 고통의 자리로 보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안에는 그와 같은 자기 파견이 있어, 자기 안에 무한한 거리를 마련하고, 하나의 우주를 만듭니다.

    '사람을 사랑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선포''악의 보복을 그대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음', 우주 이 끝에서 우주 저 끝으로 전달되는 신비의 음이며, 그것은 두음이 아니라 단음입니다.

    악과 고통을 주목하시고서 하느님은 무한히 먼 거리의 곳으로 하느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악과 고통에 대하여 전면전을 펼치시지 않고 도리어 악의 폭력을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킴으로써, 즉 그들의 운명처럼 죽으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악의 공격을 무력화시키셨습니다. 악은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악은, 악의 보복을 그대로 받으면서 고통받는 사람의 존재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는 하느님의 행동하는 물음을 끄집어내고 말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하기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물건과 같은 사람의 인생에 숨을 불어넣는 창조적 사건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고통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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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 샤갈, White Crucifixion(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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