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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 역사탐구 - 코프 주교 이야기(9)
  • 조회 수: 86, 2019-07-28 16:10:57(2019-07-28)

  • 성당의 건축(하) : 강화읍성당

    박장희(어거스틴・동국대)


      지난 주 예보한 바와 같이 오늘은 강화읍 성당의 건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강화읍 성당은 강화도 선교를 주장했던 워너 신부의 노력이 그 시작이고 워너와의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견해를 수용한 코프 주교의 선교 적 판단의 결과입니다. 또한 당시 강화도 관할 사제였던 트롤로프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강화읍 성당의 축성을 성공회 선교사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선교의 중심이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전환됨을 의미합니다.


    1. 트롤로프 신부와 강화읍 성당

      1896년부터 강화도에 부임한 트롤로프는 선교에 매진하였고 교회의 성장도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코프 주교는 강화도에 성당의 건축을 결심하고 이를 트롤로프신부에게 일임하였습니다. 트롤로프는 평소에 한국의 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불교나 한국문화에 대한 글이나 논문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트롤로프가 생각한 강화읍 성당은 이러한 한국문화와의 조화였습니다. 그의 다음과 같은 특징을 살려서 성당을 건축하였습니다. 

      첫째, 유교와의 조화입니다. 강화읍 성당도 유교의 향교와 같은 배치를 하였는데 외삼문, 내삼문, 성당의 배치가 향교와 비슷합니다. 둘째, 불교와의 조화입니다. 성당 내의 범종과 보리수 나무는 불교와의 조화를 염두에 둔 트롤로프의 안목입니다. 그는 인도에 10년생 보리수 나무를 주문하여 성당 경내에 심기도 하였습니다. 셋째, 동서양의 조화입니다. 성당의 외부 모습(중층구조)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의 실내공간(바실리카 양식)으로 배치하였던 것입니다.


    image01.png


    2. 강화읍 성당 건축에 관련된 이모저모

    (1) 성당이 강화읍내 중요 위치에 있는 배경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강화읍 성당은 강화읍의 최고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893년에 조선정부는 이곳에 해군사관학교를 설치하였고 이에 따른 영국인 교관을 두었습니다. 영국의 교관의 관사는 성당 근처인 관청리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학교가 폐쇄되자 성공회에서는 교관들의 관사와 부지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인 교관인 콜월 대위가 성공회 신자였기 때문에 구매가 용이하였습니다. 

    (2) 백두산 적송과 경복궁 도편수

      트롤로프는 성당 건축을 위한 좋은 목재를 구하려고 백방의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경복궁 재건의 후유증으로 서울인근의 좋은 목재는 전무했습니다. 때문에 백두산까지 찾아가서 적송을 벌채하여 성당의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경복궁 건축에 참여하였던 도편수를 고용하여 성당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였고 인천에서 유명한 중국인 석공을 스카웃하여 축대나 세례대, 벽돌 공사를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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