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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 역사탐구 - 코프 주교 이야기(5)
  • 조회 수: 61, 2019-06-23 22:18:28(2019-06-23)

  • 코프 주교의 서울 나들이

    박장희(어거스틴・동국대)


      선교사 랜디스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한 코프는 그 다음날인 9월 30일에 조선의 수도인 서울을 방문합니다. 그가 이용한 교통수단은 사인교(四人轎)라고 불리는 가마였습니다. 제물포와 서울 사이에 철도가 완공된 시기가 1899년이었기에 당시에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코프 주교의 서울 나들이에 대한 내용은 주교의 19번째 서신에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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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교관에서 서신을 쓰고 있는 코프(1890)


    1. 1890년의 서울  

      코프가 처음으로 경험한 서울은 1890년의 모습입니다. 정치적으로는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독립한 고종이 친정(親政)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명성황후의 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1884년에 발생하여 실패한 갑신정변은 ‘1890년 서울’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갑신정변은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일본의 도움으로 일으킨 사건인데 결국은 청(淸)의 개입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때문에 이때부터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한편 갑신정변은 개신교의 무혈입성을 만들어 주는 계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갑신정변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명성황후의 일족 민영익을 장로교 의료 선교사 알렌이 살려낸 공과 덕분이었습니다. 당시의 서울의 분위기를 요약하면 외세에 의한 혼란기이면서도 선교하기에는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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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익의 생명을 구한 알렌의 의료 활동


    2. 코프의 눈에 비친 서울

      코프가 서울에 도착하여 첫 눈에 알아 본 건물은 영국대사관이었습니다. 자신의 조국이기도하였고 당시에 몇 안 되었던 2층 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리는 하수구가 정리 안 되어 길에서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도로는 주로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졌고 큰 길이라곤 동대문과 서대문을 연결하는 종로길 정도였습니다. 

      조선에서 특이한 것은 문자가 두 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양반들이 한자, 서민들은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선교사들은 마땅한 사전도 없이 한자와 한글공부를 병행하는 이중고(二重苦)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코프의 19번째 서신에는 다듬이질을 하고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소리의 신기함, 빨간 고추를 지붕에 말리는 풍경, 마포의 일상 등… 제물포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한 저녁까지의 풍경과 느낌을 수필스럽게(?) 적어 놓았습니다.

      서울에서 여러 날을 머문 코프는 다른 교파의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공회를 개신교에 포함하여 연합하려는 노력을 하였고 그 일환으로 코프에게 강론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코프는 이를 거절하였고 개신교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는 초기 성공회의 고교회적 선교입장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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