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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 나라 - 두번째
  • 조회 수: 1842, 2015-01-19 09:53:19(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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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 (두번째)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참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범하는 오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0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 사회적 배경의 차이와,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사본마저 어려운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되어 있어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 하는 과정에서 원뜻에 손상이 간 부분이 의외로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많은 성서학자들이 이야기 합니다. Context를 무시하고 여기저기서 한구절씩 따다가 꿰맞추기식으로 해석을 할 때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요즘 뜨는 하나님의 교회 같은 빗나간 종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서에 나오는 사건들의 Context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성서가 또한 어려운 책이기도 하지요. Context란 우리 말에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 행간에 담겨있는 맥락을 좇아서 읽어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원뜻에서 빗나간 구절들에 현혹되지 않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단순히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수없다는 말씀도 맥락을 무시하고 하나님 나라를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댄다!!’라고만 받아들이면 아주 조심스러운 거지요. 이 역시 복음서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 나라라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겠지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성령의 은혜로 거듭난 그들이 보게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그래서 그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를 언급하지요.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외친 슬로건이 저 유명한 문구입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에 있다!’ ‘Repent, for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이 구절에 여러 가지 번역문이 있는데 비슷비슷합니다.

    개신교 버전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또 다른 데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등등.)

     

    사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짜잔!’ 하고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준비기간이 있었고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가 나름대로 D-day를 정하고 예루살렘 복판에서 어느날 저 슬로건을 외쳐댄 것이지요. 당시만해도 이미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저 슬로건을 외쳐대자 온 유대땅이 들썩거릴 정도로 대단히 파워풀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목을 끄는 것은, 예수님 또한 동일한 슬로건을 사용하셨다는 건데요. 요한이 잡혀서 옥에 갇히자 예수님이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로 본거지를 옮겨서 첫발을 떼는데 그때 시작부터 세례요한과 동일한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거지요.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에 있다!” ‘Repent, for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두 사람이 내건 슬로건이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두 사람이 동일한 슬로건을 들고 나왔지만 그 내용이 서로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같은 슬로건으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하면서 동네방네 다녔다는 거지요.

    당연히 이 두 메시지가 같을 수 없는 것이, 두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전혀 다르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갖고 있는 분이었고, 세례요한은 하나님 나라를 눈으로 본적도 없고, 그래서 정확히 이해할수 없었기에 동일한 슬로건이었어도 그 내용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이즈음에서 드는 의문은,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인식했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었고, 또 젊은 예수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건데요.

     

    한가지 가정을 해보면, 세례요한이 등장하지 않고, 예수님이 다이렉트로 홀로 왔다면 예수님이 저 슬로건을 바꾸었을까요? 가령 예를 들자면 이런 슬로건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요.

    회개하라. 내가 너희를 죄에서 구원하리라!’

    사실 언뜻 생각하기에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슬로건은 저것이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홀로 왔어도 반드시 그 슬로건은 하나님 나라였어야만 합니다. 세례요한의 등장 유무에 따라 예수님의 핵심 슬로건이 영향을 받아서 바뀔리가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다 보면 그 이유가 확연해 집니다.

    여하튼, 세례요한이 의미야 어떻든 적어도 정확한 이슈를 포착해냈다는 거지요.

     

    그럼, 이 세례요한이 내걸은 슬로건을 유대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였기에 온통 그 난리를 떨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세례요한이 당시 대중들에게 정확히 어필을 했다는 겁니다. 얼핏보아도 시대적 요구였다는 거지요.

     

    다시 원래 문구로 돌아가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

     

    세례요한은 이 슬로건을 내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슬로건은 다름 아니라 구약 수천년 이스라엘의 역사를 관통하는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문구를 제가 여러분 귀에 좀더 익숙한 문구로 바꿔보겠습니다.

     

    회개하라, 주의 날이 가까이 왔다!”

     

    좀더 익숙하게 들리시나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심판->회개->은혜->또다시 죄->또 심판 이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역사였습니다. 수천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눈에는 그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그에 놀라서 회개하고 그에 뒤이는 은혜, 그리고 그 은혜를 잊어먹고 또 죄를 짓고....그렇게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빗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게 구약 역사 전체에 반복됩니다. 구약에서 언급되는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 주의 날, 이 크고 두려운 날이 표현되는 구절을 보면 어김없이 심판이 언급됩니다. 주의날에 달이 핏빛으로 물들 것이며, 주의 날에 원수들이 목전에서 이슬같이 사라질 것이며.... 주의 날에 악인은 바람 앞의 겨와 같으니, 그들이 칼날 위에 설 것이며....

    , '주의 날'은 구약에서 심판의 날로 이해됐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요한이 외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라는 얘기는

    "회개하라,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 라는 얘기를 외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면 그 전통을 따라서 익숙한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 있어서 세례요한의 저 슬로건은 구약 전체를 들어올릴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정확히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이해한 거지요. 그래서 온 유대사회가 진동을 했습니다. 포로기 이후 400년간 기나긴 신의 침묵을 깨고 등장하여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자, 흡사 선지 엘리야를 연상케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이후 세례요한의 행보는 저 슬로건과 맥을 이어갑니다. 슬로건이란 자신이 이후 보여줄 행동이나 메시지를 축약해서 핵심을 담아놓은 것이지요.

     

    사람들이 나아오자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배풀지요. 죄를 입으로 시인하게 하고 회개의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을 보면 그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있다.’

    나무꾼이 나무를 찍을 때 밑둥 어느만치를 찍을지 가늠하기 위해서 도끼를 내려칠 자리에 한번 댑니다. 그리고 바로 들어서 치지요. 아주 급박한 상황이라는 거지요.

    사두개인들이 세례 받으로 요단강가로 나오자 그럽니다.

    누가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더냐 이 독사의 자식들아! 열매맺지 않는 나무마다 베어서 유황불에 던지우리라.’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심판을 얘기합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오면 곧이어 와장창 심판이 임할줄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라고 한 건데요. 실로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젊은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어떤 개념이었을까요? 예수님이 그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 이게 오늘날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면 아주 중요한 맥락일 겁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수님이 인식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세례요한이 그 단초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그 시기에 이르러 아주 중대한 사건이 하나 발생하는데 바로, 태풍의 핵이었던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버립니다. 헤롯왕이 이복형의 형수를 아내로 삼은 것을 간음한 것이라고 비난을 했기 때문인데, 요한이 옥에 갇혀서 참 드라마틱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스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힙니다.

    예수가 저 북쪽 지방에서 사역을 시작했다는 말을 제자들을 통해서 듣는데 이게 자신이 생각한 메시아의 모습이 전혀 아니거든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거든요. 임박한 심판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저는 신약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가장 걸출한 인물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세례요한을 꼽겠습니다. 예수가 떨거지들 열두명을 데리고 3년동안이나 이스라엘 전역을 휩쓸면서 그렇게 많은 이적을 보여주고 했는데도 그들은 마지막까지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베드로만이 겨우 어렴풋이 짐작을 했다고 할까요. 부활이후에야  알아차리지요. 그런데 세례 요한이 시대를 보는 안목과 그 통찰력이 어느정도였냐면 그 누구도 몰랐던 메시아를 한눈에 알아봤다는 거지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카이....!

    그러나 그 시대의 거목이 예수를 바라본 안목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분히 구약적 사고방식과 그 배경 속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해한 것인데 핀트가 빗나갔다고 봅니다. 이것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루지요.

     

    헤롯도 세례요한을 감히 죽이지 못할 만큼 유대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그 시대의 거인이 지금 옥에 갇혀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쏟아내는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정녕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그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한마디입니다. 평생의 신념을 바쳐서 달려온 그 길에서 마지막 순간에 뒤흔들렸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의 정체성이 흔들려버린 저 질문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까지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분명 그 길을 예비하여 앞서서 외치는 자의 역할이었는데. 그리고 메시아가 떳다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는 저 혼돈이 목전에 닥친 죽음보다 더 큰 괴로움이 이었을 겁니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서 제자들에게 예수의 행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지요.

    가서 물어보라. 오실 그 이가 정녕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인 세례요한에게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서 너희가 본대로 얘기해라.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 걸으며, 포로된 자가 자유케 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요한에게 메시아다 아니다 언급을 안하고 전혀 다른 얘기를 하셨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이었을까요....

     

    ****

    에구... 한두번에 끝내려했는데 글이 길어지네요. 다음 기회에 더 나누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댓글 1

  • Profile

    김바우로

    2015.01.17 21:12

    주말에 직장에 나와서 세상 일에 휘둘리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올려주신 글을 읽었습니다.
    깊으신 묵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맺음 글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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