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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하느님은 오늘도 치유하시는가?
  •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가지는 문제는 두려움과 회의주의이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치유의 기적을 나타내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믿게 된다. 물론 하느님은 의사나 간호사, 의학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여 치유하시기도 한다. 


    성경에 나타난 치유

    구약을 보면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이 자기에게 순종하면 건강과 치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발견한다(출애굽기 23:25-26 ; 신명기 28 ; 시편 41편). 치유는 하느님의 본성이다.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느님이다"(출애굽기 15:26).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열왕기하 5:14).

    치유는 한 개인의 삶에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치유와 믿음은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초자연적인 치유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거기에는 어떤 대가도 지불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신약 성령의 시대에서는 하느님께서 이 일들을 행하시리라 더 기대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란 하느님의 지배와 다스림을 말한다. 그 나라는 세상 끝 날에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것이지만(마태 24:30, 재림 300회 이상 언급), 다른 한편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 속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나라는 현재의 모습이다. "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루가 4:21).

    예수님은 이사야 61:1-2의 예언을 읽으시고 "
    이 성경 말씀이 너희들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라고 선언하셨다(루가 4:21).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이 현재적인 실재를, 죄를 용서하시고 악을 누르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등, 그의 사역에서 행하신 일들을 가지고 증명해 보이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인 동시에 '아직'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실현된 미래                        미래
                    첫 번째                                                                           두번째
                예수님이 오심                     지금 우리가                  예수의 오심
                                                       살고 있는 시간

    우리는 미래가 역사 속에 끼어든, 시대와 시대의 중간에 살고 있다. 구시대가 계속되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의 힘이 계속 이 시대 속에 뿜어져 나오고 있다.

    복음서의 1/4이 치유에 관한 내용이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권세를 주셨다. 우선은 12제자가 그 권세를 받았고 그대로 행했다(마태오 4:23 ; 9:35 - 10:8). 그 다음에는 72명의 전도자들에게 (루가 10:9-17), 그 다음에는 그를 믿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마태오 28:18-20, 마르코 16:15-20, 요한 14:12). "나를 믿는 사람은 ---".
    사도행전의 보고들(3:1-10 ; 4:12 ; 5:12-16 ; 8:5-13 ; 9:32-43 ; 14:3 ; 14:8-10 ; 19:11-12 ; 20:9-12 ; 28:8-9).
    성령의 은사 (1고린토 12장 - 병고치는 은사, 히브리 2:4).

    치유는 예수님으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표적 중의 하나이며 오늘날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오늘날에도 그 나라의 활동의 일부로 기적적인 치유를 계속 행하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 속에 나타난 치유

    초기 교부들의 저작을 보면, 치유는 초기 교회의 일상적인 활동의 일부였다.

    이레니우스(130-200, 리온의 주교, 신학자) - 은사. 마귀축출, 예언, 치유, 강건함
    오리겐(185-254, 성경학자) - 초기 신자들에 대해서 묘사하기를, '그들은 귀신을 내어쫓고 많은 사람을 치유하며, 어떤 일들을 미리 내다보며 ---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없앨 수 있었다".
    히포의 어거스틴(4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 "하느님의 도성" :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이 행해지고 있다'.
    에드워드 기번(영국의 합리주의자, 역사학자)- "로마제국의 흥망 성쇠" - 기독교가 빠르게 성장한 5가지 이유 중 하나는 '초기 교회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다. 그는 지적하기를 '오늘날에는 회의주의가 보이지 않게 숨어 있으며, 심지어 가장 신실한 사람조차도 무의식적으로 회의주의를 품고있는' 자기 시대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 지적은 우리에게도 정확한 지적이다.

    "
    초자연적인 진실을 적극적으로 동의하기보다는 냉정하고 조용히 묵인할 뿐이다. 오랫동안 자연의 법칙을 관찰하고 존중하는데 익숙한 나머지, 우리의 이성 아니 적어도 우리의 상상력은 하느님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활동을 한다는 것을 시인할 충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의 치유

    하느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치유하신다. '나는 구원한다'는 의미는 '나는 치유한다'라는 의미도 된다. 하느님은 우리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반드시 다 낫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의 몸은 약해 간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낙심할 필요는 없다. 더 많이 기도할수록, 더 많이 나을 것이다. 병이 낫지 않는 사람도 기도를 받는 것이 축복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사랑으로 세밀한 기도를 받았다면 말이다.

    치유의 은사가 있지만, 치유의 사명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은사를 우리 모두가 받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치유의 은사를 가지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아픈 사람(육체적으로나 심령으로)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치유를 위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픈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먼저 치유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된다.


    어디가 아픈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가?

    어떻게 기도하는가? - 성유, 안수기도

    그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 계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인하자.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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