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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 가스 보일러의 비유 - 평소에는 불씨만 있다. 점화가 되면 불길이 일어난다.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이야기(사도행전 2:2-4) - 오순절 성령강림과 충만 : 새로운 언어(4-12), 새로운 담력(14), 새로운 능력(37-41).

    이상적으로 모든 신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겠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기도하자 성령이 그들 위에 임했다. 그 때 감동받은 마술사 시몬이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돈으로 사려했다(14-18절).

    사도행전 9장에서는 성경에서 가장 멋진 회심의 사건이 나온다. 그것은 사울의 회심이었다. 그가 다마스코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두 번째로 그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17절).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에페소에서의 성령 강림(사도 19:1-7) : 성령에 대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성령이 임하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다니고 견진성사를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 이방인 그리스도인인 고르넬리요의 회심과 성령 충만 (사도 10:44-46)

    이들에게 일어난 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성령의 힘을 경험했다.

    사도행전 2장의 그림은
    넘쳐흐르는 성령의 힘을 묘사하는 그림이었다. 물리적인 현상도 있었다. 그들은 강풍과 같은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2절). 그것은 하느님의 루아흐의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었다. 또한 불 같은 것을 보았다(3절). 불로 상징되는 것은 아마도 하느님의 영이 우리 삶에 주시는 힘과 열정, 순결의 상징일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체험이 하느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것일 수 있다( 에페소서 3:18-19). "하느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해지면"-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기까지,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으로 경험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들은 찬양 속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자 이방인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찬양은 하느님을 경험하게 되어 감격하고 감동하는 사람들의 언어이다. 그것에는 감정을 포함한 우리의 인격 전체가 관여된다.
    우리 대부분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험은 감상주의가 아니라 감정이 모자란 것이다. 느낌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에는 반드시 감정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우정, 의사소통, 이해 그리고 봉사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아무 감정도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격 전체가 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예배 드리도록 부름 받았다.
    다만,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확고한 기초보다 감정이 우선순위에 있었을 때는 감상주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 의지와 감정 등 우리의 모든 인격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받았다.

    성령의 충만해진 이방인들은
    방언의 선물을 받았다. 배우지 않은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일 수도 있고(1고린토 13:1)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일 수도 있다(오순절). 방언 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축복을 가져다준다.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로서, 최초의 성령의 초자연적인 활동을 보다 분명하게 경험하게 해 준다. 물론 성령 충만함이 방언을 다 동반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방언으로 말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도 형식이다.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다"(1고린토 14:2). 신자가 자신의 덕을 세우는 기도 형식이다(4절). 방언의 이점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도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영으로 느끼는 것을 말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 바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14절에서 "이성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은 방언 기도가 비이성적인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지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는 찬양과 예배,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도움을 준다.
    방언 기도가 "자기의 덕을 세운다"(1고린토 14:4)할지라도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을 끼칠 수 있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신앙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다른 은사를 받는 통로가 되었다.

    바울로는 공적 예배에서 무절제한 방언의 사용을 금지 시켰지만(1고린토 14:19),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적극 격려하고 있다(5절, 18절).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느님이 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방언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방언의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성령님과 협력해야 한다. 이 말은 인격적인 성령님께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데 방해되는 것은(루가 11:9-13)?

    의심(9, 10절)
    두려움(11-13절)
    부적합함(13절)


    기도 :

    1. 하느님께 성령을 받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2. 당신의 삶에서 잘못임을 알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버린다.
    3. 하느님께 성령으로 채워주시고 방언의 선물을 달라고 기도한다.
    4. 입을 열고 당신이 알고 있는 다른 언어 외의 말로 하느님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5. 받은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다. 누구도 당신이 한 일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당신이 한 일일 수 없다).
    6. 인내해야 한다. 말이 늘려면 시간이 걸린다. 은사를 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성령 충만은 한번의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4장 사이에 3번의 충만함을 받았다. 에페소 5:18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할 때, 그는 현재 진행형 시제를 쓰고 있다. 그들과 우리에게,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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