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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성공회의 카톨릭으로부터 독립은?(펌)
  • 조회 수: 6097, 2007-07-09 13:58:17(2007-07-09)
  • 영국성공회의 개혁은 헨리 8세(1491∼1547) 때 그 불꽃이 점화되었다.

    로마교회와의 단절의 표면적 계기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의 결혼무효 소송이다.

    헨리 8세와 캐서린 사이에는 사내아이가 없었다.
    당시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없다는 것은 영국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헨리 8세는 왕위 계승을 위해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고 교황청에 요청했다.

    사실상 헨리 8세는 국가 이익을 위하여 형수인 캐서린과 정략결혼했고
    이는 교회법에도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레20:21)

    그러나 교황 클레멘트 7세는 이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교리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었다.
    당시 교황은 찰스 5세의 보호 아래 있었고 찰스 5세는 캐서린의 조카였기 때문이었다.

    또 헨리 8세가 미망인 형수와 결혼한 것은 전임 교황이 허락한 것인데
    이를 무효로 선언하면 교황권이 불신받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혼무효 청원이 거부당하자 헨리 8세는 의회를 소집했고
    의회는 '영국은 어떠한 외국 세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결의를 하고
    영국의 로마교회(Church in England)를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로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영국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의 이혼문제가 표면적 계기가 되었을 뿐
    근본적인 동기는 외국의 지배를 벗어나 왕권과 강력한 국가를 이루려는
    국가주의에 기초한 국민의식이 일치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 앙드레 모루아는 그의 영국사에서 ‘헨리 8세의 이혼은 왕자를 얻어 전쟁의
    위험을 피하고 영국 국가를 강하고 안전하게 하고자 한 것이며 그의 개혁의 시도는 군주로서의
    무정견한 망동이 아니라 영국 국민의식의 종교적 표현이었다’고 하였다.

    * 청지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7-0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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